자유로울 유
[베트남]_건기와 우기의 사이 본문
15년도의 봄이었다.
15년도의 봄이었다. 기대했던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교의 생활보다 조금 더 학업에 비중이 높아졌을 뿐 큰 차이는 없었다. 희한하게 남들과 같은 행동을 하기 싫었던 나는 이 매일 같은 삶을 벗어나고자 머리를 굴리기 바빴다. 그러던 중 베트남의 자매결연 학교와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영어로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외에도 기본적인 소양으로 요구되는 것이 많았지만, 나는 그냥 하고 싶어서 조금의 거짓말을 덧붙여 지원했다. 어설픈 영어는 몸과 입을 번갈아 가면서 표현되었고 기대도 안 했던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미성년자인 자식을 해외로 보내는 것이 신경 쓰이셨던 부모님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을 시작으로 여러 주의를 주셨지만 사실 돌이켜 생각해 보았을 때 기억에 남는 주의 사항은 하나도 없이 그저 한국이 아니 외국에 처음 발을 딛는 그 사실이 가장 가슴의 울림만이 남아 있다. 그렇게 베트남의 하이퐁으로 떠났다.
처음 느껴보는 비행기의 이륙, 등받이에 몸이 뭉개지는 이 느낌이 기괴하지만 짜릿하게 느껴졌다. 지금 베트남은 건기에서 우기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덥고 동시에 무척 습하다고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 내리자마자 살결로 뭉치는 미세한 물방울들이 동남아시아에 왔다는 느낌을 확실하게 주었다. 흙바닥을 달려 하이퐁 시내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풀숲과 어우러진 유럽풍 건물, 그 사이로 보이는 방목된 소들. 확연히 이국적인 느낌이다.
교환 학생은 각각의 현지 학생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진행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홍’. 나와 동갑인 베트남 학생이었다. 홍의 집은 4층으로 옆으로 넓은 것이 아닌 위로 올린 탑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홍과 홍의 부모님은 무척 친절하셨다. 독방과 혼자 쓸 수 있는 화장실을 제공해 주셨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공식 행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홍과 시간을 보냈다. 베트남의 피시방에 데려가 주기도 하고, 하이퐁에서 유명한 곳들을 오토바이를 타고 둘러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베트남의 고등학교도 방문하고, 수업도 들어볼 수 있었다. 아직도 학교에 도착했을 때 난간에서 우리를 쳐다보던 수백 명의 베트남 학생들의 모습이 선명하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서로 한글과 베트남어를 알려주었다. 5일 간 생활하면서 베트남은 고등학교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이나, 매일 쌀국수를 먹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문화의 차이에 대해 흥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도 아마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교류 기간 베트남의 학교의 축제를 즐기기도 하고, 야시장에 가보기도 하고, 쌀국수도 질리도록 먹었다. 물론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있었고, 물갈이도 경험했지만 그 또한 웃긴 추억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무언가에 흥미를 가지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흥미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그 흥미를 어떠한 형태로 실현하는 것이 여간 쉬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말로 들었던 베트남과 실제로 내가 보고 느낀 베트남은 굉장히 달랐다. 보고 느낀 것의 중요성.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고 나는 더욱더 많은 것들을 보고 싶어졌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싶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많은 곳들을 돌아보고 나의 그릇을 키워야겠거니.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 없는 목표를 세웠다. 베트남에서의 경험은 비록 짧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그게 비록 17살의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눈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로 가기 시작했다. 사서 고생이라고 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의 시작이다.
비록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홍과 베트남 친구들이지만 언젠가 연이 닿는다면 또 한 번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게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리 마음먹는 것만으로도 그 추억의 연이 이따금 다시 떠오를 수 있으니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때 사진을 좀 더 많이 찍어둘걸. 당시에 사진을 찍고 그러는 게 뭐가 부끄러워서 그렇게 주저했는지 참 후회스럽다.
여담으로 베트남에서 돌아와서 후일담을 전달 받은 친구들이 다녀오고 엄청 좋았다는 말을 듣고 본인들도 갈 걸 하는 후회 어린 말들을 뱉었다. 하지만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거라고 이 애송이들!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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