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울 유
[오사카]_ 일본에 빠지다 본문
일본과 나의 첫 단추
고등학교로 입학하기 전, 중학교 3학년 나는 일본 소년만화에 꽂혀서 친구들이 수학의 정석이나, 영단어를 외울 때 일본어 단어와 문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무슨 일본어를 공부하냐고 쓸데없이 일본어 공부할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거나 수학 문제 하나를 더 풀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런 태도를 의식하고 있었다면 꽤 큰 상처가 되었을 것 같다만 당시에는 일본어, 그리고 일본어를 넘어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커져 그런 비아냥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 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베트남을 다녀온 뒤, 베트남 해외교류에서 친해진 한 학년 선배와 친해졌는데, 그 선배가 연말에 일본 여행을 가지 않겠냐고 나와 준혁이에게 물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던 나는 바로 좋다고 승낙했지만 일본에 대해 잘 모르던 준혁이는 조금 고민을 하긴 했지만 끝내 가겠다고 말했다. 선배의 외가가 일본쪽이라 여행을 하는데에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선배와 선배의 친구 두 명과 나와 준혁이 5명에서 연말에 오사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한창 공부에 매진하며 이르긴 하지만 대학교 준비를 위한 생기부를 채우고, 성적관리를 하기 바쁜 시기에, 나는 일본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8개월 정도를 아이스크림 프렌차이즈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내 기억으로 내 첫 아르바이트였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닌데, 과거의 나지만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무언가에 몰두했을 때, 그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시발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빠르게 흘러 겨울방학이 되었다. 베트남에 갈 때 만들어 두었다가 책상서랍 구석에 있던 여권을 꺼내들고 모아둔 돈을 엔화로 모두 환전해서 간사이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이 여행이 내게 의미가 컸던 것이 그동안 공부했던 일본어가 조금이라도 효과를 발휘하는 지에 대한 증명의 여행이기도 했다. 한국의 고등학생, 그것도 제 2외국어가 중국어인 고등학생이 일본어를 쓰고 말할 일이 뭐가 있을까. 묵묵히 좋다는 감정 하나로 해왔지만 어느 지점에 도달하니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스스로 가는 길에 대한 불신이 들었으니까.
아 물론 대부분의 주된 여행 관련 통역은 선배가 해주기로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개인의 고충이니까.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혼란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 공항에서 어떻게 오사카 시내로 나가야 하는 지. 공부하면서 지겹게 봤던 일본어를 한국어 없이 통으로 보니까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들떴던 것은 이곳이 한국에서 항상 마음 한 편으로 바래왔던 일본에 왔으니까. 새로운 곳은 늘 기대와 그에 비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예상 밖의 일들이 공존한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우리는 숙소값이 꽤 많이 나가는 유스호스텔에서 묵었다. 다다미 바닥이 한 겨울에 그렇게 차가울 줄 몰랐고, 일본은 난방이 없다는 사실에 두꺼운 이불로 덜덜 떨며 잠들었지만 그 마저도 장난스럽게 행복했다.
일본 자체가 처음이라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 형들과 사적으로 해외를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라 새로웠다. 꽤나 오래전 일이라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온전히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뜨문뜨문 기억 나는 몇 가지 기억이 있다. 도착하고 다음 날에 오사카에서 유명한 가이유칸 수족관에 가서 고래상어를 보고, 수족관 입구를 돌던 펭귄의 무리와 사육사가 기억난다. 우리는 서로 우습게 펭귄의 걸음걸이를 따라하며 낄낄거렸다. 나라의 사슴 공원에서는 길거리를 누비는 사슴들에 충격을 받았고, 나라에서 전철을 타고 간 아라시야마를 처음에 교토로 착각했다. 여행에서 돌아오고 몇 달 뒤 까지 나는 내가 교토에 다녀온 줄 알고 있었다.
지금과 다르게 글로코상 앞에는 한국인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15년도는 아직 해외여행을 가는 한국 사람들이 지금에 비해 많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이상 한국 사람들을 보긴 힘들었다. 또 홉슈크림이라는 다과가 유행했었는데, 슈크림을 좋아해서 길을 걸어다니면서 먹고 다녔다.
중간중간에 친구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낼 때, 내가 공부했던 일본어 실력을 뽐낼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가벼운 대화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인과 생각보다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 스스로도 엄청 놀랐던 기억인데 역시 묵묵하게 그리고 꾸준하게 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성장하는 모양이다. 이로서 한국에서부터 걱정했던 매너리즘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3박 4일의 오사카, 오고 가는 날을 제외하면 느긋하게 돌아보기에 부족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일본어 실력을 확인하고 만족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다음은 내가 그 여행을 주도하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 다짐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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